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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소식지

2016. 7월 68호 "저 마이너스 파산했어요"

by 부산여성회 2016. 8. 24.

함께 나누는 소중한 이야기

 

 

                         저 마이너스 파산했어요.”

                                                                                                                                                                                                             

                                                                 

                                                                                                  안 은경 (남구지부)

 

저 마이너스 파산했어요.”

운영위회의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생각이 없는건지, 언니들이 너무 편한건지 머릿속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또 나의 치부를 드러냈다. 늘 그렇듯이. 그래도 언니들은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해주며 진심으로 다독여주었다. 누구나 다들 그렇게 산다고... 남편의 월급으로는 늘 빠듯해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해진지 2년이 넘었다. 그래도 나는 직장 구해야지를 입버릇처럼 말로만 하고 -마이너스통장을 믿고-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결국엔 마이너스의 정점에 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가 없게 되었다.

운영위회의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아이스크림가게가 새로 생겨 알바를 구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그렇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이제는 망설이고 고르고 할 여유 따위는 없다. ‘알바면 어떠랴, 일단 돈부터 벌자라며 당장에 전화를 걸어 면접을 봤다.

이력서를 쓰는데 나의 경력은 너무나 화려했다. 유명 휘트니스센터의 안내, 대형 빌딩의 안내, 모 대기업 연구소의 파견사원, 그리고 보육교사. 하지만 이런 일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대한민국 주부로써는 재취업하여 경력을 쌓기에는 무리가 많아 그저 이력서 빈공간만 채우는 의미 없는 한 줄이 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보육교사로 돌아가기엔 비현실적인 보육정책으로 교사들만 죽어나는것같아 거기에 다시 발 들여놓기가 겁이난다. 그리고 내가 내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고 보육기관에 맡겨두고는 나는 남의 아이를 돌보러 간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 같아 이 일은 아이가 클 동안만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나의 화려한 경력은 뒤로 하고 처음으로 해보는 아르바이트. 시급은 역시나 최저임금 6030. 하루 5시간 근무해서 일당 3만원. 헛웃음이 나왔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여성회 사무실에서 최저인금을 만원으로 인상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논하고 왔던지라 최저시급 6030원은 왠지 부당대우를 받는 기분이었다. 나도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일당 3만원 받고나며 이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비합리적인것같다. 최저임금 만원으로 인상될 때까지 나는, 그리고 우리는 싸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도 내가 일하는 가게의 아이스크림을, 누군가가 일하는 가게의 소고기를 사먹을 수 있을테니까.

오픈하는 가게는 너무나 북적이고 바빴다. 그에 따라 내 몸도 함께 바빴다.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맙소사. 처음해보는 일이라 긴장도 되고 많은것을 배워야하는 지라 나는 일하는 5시간동안 물 한 모금, 화장실 한 번 다녀오지를 못했다. 당연히 생리대를 갈 정신도 없었다. 그렇게 3일정도 지나니 내 몸에는 이상 이 생기기 시작했다. 습한 여름에 여성들이 잘 걸릴 수 있는 질염에 걸린것이다. 당연한일이다. 축축한 생리대를 5시간동안 하고 있으니 겨울이였다 하더라도 질염에 걸렸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하루 일당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쓰게되었다.

점심시간은 단 30. 8시간미만의 근무자에게는 30분밖에 쓸 수가 없고, 30분도 시급에서 차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점심시간을 쓰지 않고 그냥 시급을 다 받겠다 했으나 그것도 안된다. 무조건 근무시간의 30분을 휴식시간으로 사용을 하고 시급에서 차감을 한다는 것이 노동법에 명시되어있다는 것이다. 노동법은 노동자를 위한 법이어야 하는 것인데 마치 고용주를 위한 노동법 같이 느껴지는것이다. 일하는 것이 즐거워야하는데 시작부터가 삐걱되는 것 같아 많이 불안하다. 제일 중요한건 점심시간 30분만에 밥을 먹고 돌아오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김밥 한줄 먹고 다시 일을 하거나 우유한잔 마시고 잠깐 앉았다 일어나는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퇴근을 하고 일단 뭐 좀 먹고 한 숨 돌리고 나면 병아리같은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된다. 나는 아직 청소도 설거지도 저녁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내 귀에 대고 쉴새 없이 엄마 놀아줘, 엄마 놀아줘를 귀가 찢어지도록 외쳐된다.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나쁜엄마가 되어버렸다. 그러지 않기 위해 자녀대화법을 다니고 감정코칭을 배우고 아이들에게 소리지르지 않는 좋은 엄마가 되길 원했지만 또다시 돌아가버렸다. 소리 꽥 꽥 지르는, 놀아주지도 않는 신경질쟁이 엄마로. 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었다. 그저 남편의 어깨위에 있는 짐이 너무나 무거워 보여 한 스푼이라도 덜어내 주고싶어 시작했는데 그러는 동안 아이들에게서 자상하고 따뜻한 엄마를 치워버렸던 것이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며 힘든 스트레스를 왜 아이들에게 풀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이제 일이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면 내 체력의 70%만 일하고 30%는 아이들에게 돌려줘야겠다.

최저시급이 만원으로 인상되고 점심 한끼 맘 편히 먹는 날이 오면 나의 스트레스도 덜하지 않을까?

 

 

※ 2016 양성평등 주간 기념 수기공모전  "꽃보다 내 몸2" [평등한 세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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