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여성과 아동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안전한 마을은 누가 만들까.
장이정수(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
요즘 내가 사는 동네는 비폭력마을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주의교육과 여성영화 함께 보기, 안전한 마을을 위한 작은 축제 등을 네 곳의 동네에서 준비하고 있다. 불과 천 만원 정도의 사업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안전마을로 지정된 곳은 몇 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대부분 CCTV 설치 등 물리적 시설개선사업이다. 여전히 안전은 ‘깨진 유리창 법칙’ 수준이다. 마을의 일반적인 학부모 또래의 여성들 또한 비폭력마을학교에 대한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곤혹스럽다. 아이들에게 하는 성교육은 관심있어도 본인이 배우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폭력 자체가 내키지 않고 여성주의, 페미니즘은 너무 쎄고 본인은 살면서 차별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조금 더 나아가면 요즘 누가 맞고 사냐는 것이고 여자 아이들 등쌀에 아들이 밀리고 있다는 걱정도 반드시 나온다.
얼마전에는 영국의 1913년 무렵의 참정권 투쟁을 다룬 써프러제트 영화를 서울의 한 풀뿌리단체 회원들과 같이 보고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나누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참정권을 위해 어떤 시대의 어떤 여성들은 달리는 말에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초기 여성인권운동가는 사형을 당하기도 했으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누리고 있는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 투표할 권리, 일할 권리 등 여성도 인간이라는 절규는 나보다 앞선 여성들의 희생과 피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토론회에 참석한 중년 남성의 관점은 달랐다. 우리 사회는 이미 양성이 평등하고 여성대통령이 있는 나라고 초등학교 교사는 여자가 더 많아서 남자아이들이 여성스러워지고 있음을 우려하며 차별이 약간 있는 것은 점차 개선될 거라는 희망의 삼종세트다. 동네 여성들에게도 종종 듣는 내용이다.
여성의 지위에 관한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 23등과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 115등 중 무엇이 맞냐는 논란도 이런 인식차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남녀관계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만 그래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23위 입장과 다른 모든 문제들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115위 입장 간의 격차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러는 사이 강력범죄의 대상은 80%가 넘게 여성이 희생되고 3일에 1명 꼴로 사귀는 남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 동일노동에 대해 62%의 임금을 받으면서 정치영역에서 내각 참여 여성비율은 130위고 민간 및 행정의 관리직 성비 역시 113위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수치들은 전업주부들에게는 먼 남의 일이었던 것이다. 정치나 경제, 행정은 남성들의 영역이고 가정과 돌봄 노동은 여성의 역할인 것이다. 원래 그것이 자연스럽고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여성장관이 여성부 장관 한 명인 것은 박근혜정부의 취향정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가 안전한 마을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일단 여성들이 이러한 남녀 임금과 정치 대표성의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어야 시작이다. 술을 같이 먹고 취했어도 여성이 동의하지 않으면 성관계를 할 수 없고 한쪽의 사랑이 식으면 그것을 감당하고 슬퍼하는 것이 사랑이며 성폭력의 원인을 남성의 성욕이나 여성의 짧은 치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졸립다고 운전하면서 자는 것이 용납되지 않듯이, 소유욕은 본능이니까 도둑이나 소매치기가 용서되지 않듯이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성관련 제도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매매를 범죄로 만들었고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러한 법이 우리 자신들 개인의 삶과 가족, 지역사회에 상식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가 고통받는 것을 묵인하는 방관자다. 마을에서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한 사람 한 사람들과 만나 생각의 전환을 얘기하고 모든 정책에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일상적인 가부장제 가족관계와 미디어의 일상적 차별과 혐오를 발견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교육기관에서 어릴 적부터 의무적으로 인권과 비폭력 교육을 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가 아닌 인권선언문 낭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강남역 10번 출구의 대안정책이 화장실분리정책이 아니길 빈다. 더 많은 여성이 안전정책에 대해 평가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부산여성회의 끈질긴 노력이 지역사회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삼삼오오 일단 동네에서 얘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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