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를 통해 본 세상
여성들에게는 사적인 공간이 가장 위험한 곳이다.
배영미 (사하가정폭력상담소 상담실장)
차도변에 있는 여기, 상담소는 종일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대형트럭이 지나갈 때면 그 하중이 사무실 안까지 전해지기도 한다. 물위의 배처럼 콘크리트 건물이 출렁하는 순간 실내와 실외의 경계는 지워지고 밖에 있는 사물이 압도해 버린다. 상담소를 찾는 여성들이 누군가에 의해 침해 받은 사람들이라면 이 공간은 은유적으로 그녀들의 삶을 닮아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꿈꾸던 오래 전, 그녀는 온순한 영역에서 알을 품듯 생의 의미를 부화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하지 않은’ 자기만의 방을 가진 여성이 너무 많은 현실은 방에서 나오라고 외치고 있다. 고치에 갇혀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처럼 자기만의 방에서 비명을 삼키다가 거친 호흡으로 폭력의 경험을 증언하기 시작하고 있다. 안전하지 못한 방은 필요 없다고!
조현병으로 입원을 몇 번 한 적이 있는 삼십대 여성을 상담하고 있다. 부술 수 있는 집안의 모든 물건을 손으로 망치로 부수는 딸이 증오스럽다는 부모. 딸의 이야기 속에서 집은 화물차 운전사였던 아버지가 며칠 만에 돌아오면 깨지고 무너지고 찢어지는 폭력의 풍경으로 그려졌다. 억겁같은 시간을 견디며 쌓아올린 공포와 분노의 하중을 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딸은 말했다 “아버지가 때릴 것만 같아 방어할 뿐이예요”
몇 년째 무시로 전화를 하는 40대의 그녀. 십대를 좀 노는 학생으로 보내면서 부모 속을 태웠단다. 엄마가 했던 안타까움의 악다구니 말들은 세월 속에서도 풍화되지 않고 주술이 되어그녀를 무너뜨린다. 엄마 말에서 도망가기 위해 수천 병의 술을 마시고 수없이 자살을 시도하고...... “나같은 년은 실패작이라서 죽는 게 낫다고 했어요”
보릿고개를 겪지도 않았고 일사후퇴 피비린내의 기억도 없이 잘 먹고 입고 자란 세대들이 실패한 인생에 대한 조악한 변명으로 부모의 폭력을 들먹인다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잘 해 줄 테니 이혼은 어림없다고 가해자들은 말들을 한다. 그러나 폭력의 기억은 때린자의 머릿속에서만 헐거워질 뿐 피해자에게는 오래오래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
여성들에게는 사적인 공간이 가장 위험하다. 죽도록 맞거나 폭언이 난무해도 가해자들의 왕국에는 경찰이 와도 어쩌지 못한다. 인터넷에서는 평등이 두려운 가부장제의 상속자들이 온갖 ‘녀’들을 탄생시키며 불평등을 수호하고 있다. 집안에서, 골목에서, 공공 화장실에서, 일터에서 여성이란 이유로 안전하지 못하다. 사적, 공적, 가상의 공간에서도 여성이란 이유로 안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저무는 것들은 위태로운 비명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는 것을. 여성혐오라고 하든, 무엇이라 하든 자신의 피해 경험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오랜 폭력의 연대는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폭력의 흔적이 묻어 있지 않은 처음같은 새벽이 올 것만 같다. 이 소란한 변화를 견디자. 즐기자. 함께 넘어 가자.
사하가정폭력상담소는..
여성과 아동,노인을 비롯한 가족구성원을 가정폭력으로부터 평화롭고 평등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가정폭력 피해상담, 가족문제 상담, 가정폭력예방교육과 캠페인 등 다양
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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