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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생각해봤는데-

아빠가 노을이에게 쓰는 편지

by 부산여성회 2012. 9. 14.

 

 

 

 

연제 좋은아빠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연제구의원 노정현님이 딸에게 쓴 편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 편지는 9월 8일 부산역에서 진행된

'아동성폭력 추방을 위한 부산부모행동' 집회에서 낭독했어요.

 

 

 

ᆢᆢ

노을이에게

 


요즘 니가 말귀를 알아먹는 거 같아서 공개적으로 밝히는건데

아빠가 니가 아빠를 닮아 걱정이라고 하는 말은 그저 우스개 소리야.

남자같은 굵은 뼈대, 코끼리같은 두툼한 발, 다 속여도 그것만큼은 속일 수 없다는 작은 눈, 왕고집...

그러고 보면 아빠를 많이 닮긴 했어. 아빠도 엄마를 좀 덜 닮은 게 아쉽긴 해...

근게 그게 어디 걱정이겠니.

너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만 똑닮은 존재가 있다는 건 오히려 사랑스럽고 흥미로운 일이란다.

그런데 아빠가 요즘 진짜 걱정이 생겼어.

아빠, 엄마같은 어른들도 눈 가리고 귀 막고 싶을 정도로 나쁜 일들이

주위에서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거든. 특히 우리 노을이 같은 어린 아이들한테 말이야.

들꽃 한송이도 미안해하면서 꺽자는 세상에서 사람을,

그것도 막 피어나려는 꽃송이같은 너희들에게 상상조차 하기 싫은 무시무시한 폭력이 가해지니

충격적이고 무섭기까지 하단다.

아빠를 더 답답하게 만드는 건

아빠 혼자만, 우리 가족만의 힘으로는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현실이야 .


분노스럽고, 답답하고, 무섭고...

그래서 이렇게 많은 언니 , 오빠, 엄마, 아빠들이 여기에 모인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만약에 누군가가 너한테 그런 나쁜 일을 했다면 아빤 어떻게 했을까.

아마 아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개인적인 분노를 행사했을지도 몰라. 누가 말릴 수 있겠니.

그래서 너희들한테 한 나쁜 짓은 더 세게, 그리고 끝까지 처벌하는 것에 아빤 적극 찬성해.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가 솜방망이 처벌인 건 사실이거든.

100년이든 200년이든, 마늘과 쑥만 먹여서라도 인간성을 되찾고 반성하도록 만들어야 해.


그런데 어떤 어른들은 나쁜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거나 아예 억지로라도 생각을 지워버리자고 해 .

그걸 보고 다른 사람도 지레 나쁜 짓을 못하게 될거라는 거지.

아빤 그건 동의하기 힘들어.

물론 그렇게 하면 나쁜 일을 행했던 사람이 또 다시 그런 나쁜 일을 하지는 못하게 될 거야.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나쁜 생각을 품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니.

아빠는 어른들의 세상이 그런 나쁜 짓과 나쁜 사람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해.


노을이는 노을이니까 소중한거야 .

누구보다 모자라다거나, 그래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닌거야.

세상의 모든 노을이는 모두 동등한 존재로 인정 받고 존중받아야 해.

그렇지. 당연한거야.


그런데 어른들의 세상에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나쁜 생각들이 있어.

어처구니 없지. 너희들이 만든 게 아니라서 이해가 안될거야.

그런데 그 나쁜 생각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그게 이 나쁜 짓들의 시작인 건 분명하다고 생각해.


자라면서 노을이는 시험점수에 따라 줄을 서야 할 거야.

굳이 전국의 아이들 중 몇 번째에 서 있는지도 친절히 알려준단다. 물론 그 순서는 바뀌기도 해.

그런데 그건 아빠엄마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아빠엄마에겐 너 만한 예쁜 아이가 이 세상에 없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얼굴과 몸의 생김으로도 위아래를 정한단다.

똑같이 일하고, 아니 더 열심히 일하고도 절반의 월급을 받는 깜짝 놀랄 일도 경험하게 될거야.

특히 여성이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어른들의 세상은 자꾸만 싸워서 이기라고 해. 혹시 지거들랑 또 싸워서 이기라고 해.

싸움에서 밀려난 사람은 생각해주질 않아. 

그래, 10명 중에 1명 정도는 끝까지 이길 거야.

그런데 나머지 9명은 어쩌란 말이야. 

뒷자리로, 아래로 밀리고 밀리면 얼마나 자신이 모자라 보이겠니.

세상이 얼마나 밉고 실망스럽겠니.

그래서 스스로가 소중하지 않으니 마음과 몸을 함부로 쓰게 되는거야.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도 문제야.

어느 샌가 이 싸움에서 밀린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돼.

싸움에서 밀린 사람을 쓰고 버려도 되는 기계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놀이개감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단다.


싸움에서 밀린 사람은 또 어떤 싸움에서는 이긴 사람이기도 해. 그래서 더 나쁜 생각이 만들어져.

끝없이 계속 되는거지. 결국에 가장 구석진 곳에 밀려 서 있는 사람은 애초의 사람됨을 잃고

너희같이 어린 새싹들에게까지 나쁜 짓을 하게 되는거야 .


아빠도 어른인데 이런 나쁜 생각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을거야.

노을이 보는 일, 집안일을 똑같이 직장생활하는 엄마를 돕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 때가 많아.

여성을 동등한 생각으로 대하고 있지 못한 거 맞어.

어쨌든 아빠는 이런 나쁜 생각의 흐름을 바꿔야 노을이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어떻게 할 거냐구?


아빠가 생각하는 답은 <공.동.체>야.

아빠는 총각 때부터 삼촌들과 이모들과 동네에서 작은 모임을 시작했어.

뭐랄까. 쉽게 얘기하자면 아빠가 아까 얘기했던 나쁜 싸움을 싫어하는 모임 정도랄까.

그리고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뒤로 밀리는 친구들이 있으면

모두가 함께 안아주는 그런 모임이야 . 좋지.


따뜻하게 만나고 서로를 챙겨낸 지 벌써 7년째야. 그러면서 믿음이라는 게 생겼단다.

노을이는 성현이 삼촌의 딸이기도 하고, 동훈이 삼촌의 재우 오빠야는 아빠 아들이기도 해.

아빠는 우리 마을에 잘 아는 사람이 많아야 안전한 마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사람을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순수한 생각과 믿음이

어른 세상의 나쁜 생각들을 아름다운 생각들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


물론 친구들 10명 중 1명이 가까운 이웃에게 피해를 받고 있다니 섬뜩하기도 해.

그렇다고 문을 꼭꼭 잠그고 가족끼리만 지낸다고 나쁜 생각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봐.

공동체가 훨씬 더 안전하고 희망적이란다.

나누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작지만 소중한 공동체.

그것이 결국 바꾸어낼 것이라고 믿는단다 .

노을이가 자라서 노을이의 노을이를 갖게 되었을 때쯤엔

담장을 뒤덮은 담쟁이 넝쿨처럼

아빠엄마의 따뜻한 공동체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빠가 최선을 다할게.

사랑해. 노을아!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노을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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